지난달부터 각종 커뮤니티에 누진세에 대한 글이 끊이지 않았고 8월 4일 소송을 기점으로 각종 매체가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체계는 전기를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6가지 계약 종별로 구분하여 해당하는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계약 종별로는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이 있는데, 전기의 13%를 차지하는 '가정용 전기(주택용)'에만 누진세가 적용된다. 또한, 누진세는 현행 6단계로 구성되고 최저요금과 최고요금의 차이는 11.7배로 달한다. 외국 사례를 비교해보면 대부분 3~4단계 정도를 유지하며 가장 낮은 요금과 비싼 요금의 차이는 2배 이내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누진세의 도입배경은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서, 1974년에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정에는 높은 요금을 부과해서 절약을 유도하고, 소비량이 적은 가구에는 낮은 요금을 부과해서 요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그런 목적으로 도입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성장이 중요시했기에 부족한 전기를 될 수 있으면 산업용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가정용에만 누진세가 적용되었다.
도입배경은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의 기본전제는 저소득 가구는 소비량이 낮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저소득 가구도 전력소비가 상당히 많이 증가해서, 애초 저소득 가구 요금 부담을 줄인다는 목적도 사실 많이 퇴색되었다.
전체전기 사용량은 보면 산업용 전력 소비 비율이 52%이며, 공공·상업용은 32%를 차지한다. 반면 가정용은 13%에 불과하다. 한국의 가정용 전력 소비 비율이 눈에 띄게 낮은 것은 무엇보다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으로 분석된다. 산업계에 적용되는 산업용(kWh당 81원)과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용(kWh당 105.7원)의 전기료에는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산업용 23%, 가정용 37%, 공공·상업용 36%), 일본(산업용 30%, 가정용 31%, 공공·상업용 36%) 등 각 전력 소비 비율이 비슷한 OECD 다른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전기소비량은 세계 8위(2015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전기의 절반 이상을 기업에서 소비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상위 1.2%에 해당하는 대기업들이 산업용 전기의 64%를 사용한다. 또한, 기업에서 절전하면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보조금이 나오게 되며, 매달 전기요금의 3.7%에 해당한다. 이러한 친기업적인 요금체계는 한국전력공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되었다.
문제는 친기업적인 요금체계를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생활용품 전체의 인플레이션이 발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전기요금으로 발생하는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판매가를 올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서민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말이 달라진다. 2011년 첫 번째 여름에 일본 정부는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았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대해서는 일종의 강제 절전 조치인 ‘전력사용제한령’을 발동했다. 강제로 일정 비율 이상 전기 소비를 줄이게 한 것이다. 일본 정부 정책이 발표되자 일본 기업들은 목·금요일에 쉬고 토·일요일에 공장을 가동하거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 근무 형태를 바꾸었다. 전기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전등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발광다이오드(LED) 전등으로 교체하거나 냉방 온도를 조절했으며 공장 안에 있는 자가 발전기 가동률을 높였다. 그동안에는 전기를 외부에서 공급받으면서 놀리고 있던 자가 발전기를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도요타자동차는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전기의 30% 이상을 자가발전으로 충당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전기요금이 10% 올라도 전기 소비를 10% 줄이면 전기요금 부담은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업의 상황을 보면 그동안 막대한 전력을 먹는 용광로나 건조기 등을 석유와 석탄을 사서 자체적으로 돌렸는데, 산업용 전기가 저렴하다 보니 산업용 전기에만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기공사의 전기수급량이 부족할 경우 안 쓰는 발전기들은 돌려서 전력 생산해서 한국전력공사에 판다.
전체 판매 전력량에서 주택용의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05년 15.7%에서 지난해(2015년)에는 13.6%까지 내려갔다. 같은 기간 산업용은 52.6%에서 56.6%로 올라갔다.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다른 분야보다 증가율도 낮다. 최근 5년간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연평균 0.6% 증가해 산업용(1.8%)에 크게 못 미쳤다. 결국, 누진제를 완화해 주택용 전기 소비량이 30% 증가할 경우 전체 전력 소비량은 3~4% 정도 늘어나는 데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기수급이 부족해지면 언제나 절전캠페인을 한다. 소위 가정용을 비롯하여 관공서와 공기업, 교육용 전력소모 줄이기이다. 전체적인 전력 여유가 확보되려면 산업용 전기를 줄여야 하는 데, 기업에 손대지 못하니 애꿎은 국민에게만 탓을 돌리는 것이다. 2015년 한국의 기업환경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이는 평가가 시작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순위다. 상승한 부문은 재산권 등록(79→40위), 소액투자자 보호(21→8위), 법적 분쟁 해결(4→2위), 퇴출(5→4위)이고 전기공급(1위)은 2014년과 같은 세계 1위이다.
산업용 전기를 건들지 않더라도 누진세의 1~4단계의 요금을 유지하면서 과도하게 높은 5~6단계의 요금만 조절하면 서민층 부담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5~6단계를 조절하면 부자 감세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기를 많이 쓴다고 반드시 상류층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그만두어야 한다. 상류층 1인 가구보다 일반가정 4인 가구가 전기사용량이 많을 수 있고, 상위 1% 계층 때문에 나머지 99% 가 피해를 봐야 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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